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370년 넘게 풀리지 않았던 17세기 암호가 AI에 의해 44분 만에 해독됐다는 보고가 나왔습니다. 흥미로운 지점은 속도가 아니라 방법입니다. AI는 암호를 깨려 들지 않고 암호가 실린 책 자체를 단서로 읽었습니다.
"AI가 대단한 걸 풀었다"는 소식은 자주 들립니다. 그런데 무엇을 어떻게 해서 풀었는지까지 알고 나면 그 의미가 달라집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 사례가 어떤 과정이었는지, 그리고 이런 소식을 어떻게 읽으면 좋은지 정리해 보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2026년 9월 15일, AI 연구를 평가하는 조직인 VALS AI가 앤트로픽의 모델 '페이블 5.1'이 오랜 미해결 암호를 풀었다고 보고했습니다.
대상이 된 것은 1653년 스코틀랜드의 저자 토머스 오힌렉이 남긴 암호로, 두 줄에 각각 32개씩 모두 64개의 숫자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암호 연구자 클라우스 슈메가 오래전부터 주목할 만한 미해결 암호로 꼽아 온 대상이기도 합니다.

왜 오랫동안 풀리지 않았을까요
일반적인 암호 해독은 패턴을 찾는 데서 출발합니다. 어떤 기호가 얼마나 자주 나오는지, 어떤 규칙으로 배열됐는지를 분석하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이 암호는 그런 접근으로는 실마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숫자 자체에 규칙이 숨어 있는 것이 아니라, 숫자가 다른 무언가를 가리키는 좌표였기 때문입니다. 가리키는 대상을 모르면 아무리 숫자를 분석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구조입니다.
AI가 택한 접근은 달랐습니다

보고에 따르면 AI는 표준적인 암호 분석에 매달리는 대신 암호가 실린 책의 다른 부분을 살폈습니다. 그리고 암호 바로 앞에 실린 특정 섹션에 주목했습니다.
핵심은 여기서 나왔습니다. 암호의 숫자들이 그 섹션에 등장하는 단어의 순서를 가리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각 숫자가 지목한 단어의 첫 글자를 순서대로 이어 붙이자 문장이 드러났습니다.
해독된 내용은 당시 국왕 찰스 2세의 안녕을 비는 왕당파의 기도문 두 줄이었습니다. 두 줄 모두 정확히 32글자였고, 각 줄의 마지막 단어가 서로 운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우연히 맞아떨어지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어떻게 검증됐나요
해독 결과가 그럴듯해 보인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이번 사례에서는 두 가지가 근거가 됐습니다.
첫째는 형식입니다. 글자 수가 정확히 맞고 운까지 맞는다는 점은 우연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둘째는 사료입니다. 저자가 왕당파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해독된 내용의 성격과 앞뒤가 맞았습니다.
| 구분 | 통상적인 암호 해독 | 이번 사례 |
| 출발점 | 암호문 자체의 패턴 | 암호가 실린 책의 맥락 |
| 숫자의 의미 | 치환된 기호로 가정 | 단어 위치를 가리키는 좌표 |
| 필요한 것 | 계산량과 통계 | 원문 전체를 읽고 연결하는 일 |
| 검증 방법 | 복호화 결과의 정합성 | 형식 일치와 사료 대조 |
이런 암호를 왜 만들었을까요
17세기 중반 영국은 내전과 왕정 복고를 오가던 시기였습니다. 어느 편에 서 있는지를 드러내는 일이 곧 신변의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 해독된 내용이 국왕의 안녕을 비는 기도문이었다는 점은 그래서 의미가 있습니다. 공개적으로 적기 어려운 정치적 입장을 책 속에 숨겨 둔 셈입니다. 암호를 만든 방식도 이 맥락과 맞아떨어집니다. 복잡한 기계나 별도의 열쇠 없이, 같은 책을 가진 사람이라면 풀 수 있도록 설계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꿔 말하면 이 암호는 전문가를 겨냥한 난제가 아니라 같은 편을 겨냥한 신호에 가까웠습니다. 수백 년이 지나 맥락이 잊히면서 오히려 풀기 어려운 문제가 된 것입니다.
이 사례가 보여 주는 것
사례 1. 예를 들어 오래된 문서를 연구하는 상황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어려운 부분은 글자를 읽는 일보다 여러 자료 사이의 연결을 찾는 일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번 사례는 그 연결을 찾는 작업에 AI가 쓰일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사례 2. 비슷한 구조는 다른 분야에도 있습니다. 방대한 자료 안에서 "이 숫자가 사실은 저 목록의 순번이었다" 같은 관계를 찾는 작업이 그렇습니다. 사람이 하면 오래 걸리지만 시도 횟수 자체가 병목인 일에 해당합니다.
즉 이번 성과의 의미는 "AI가 사람보다 똑똑하다"가 아니라, 지치지 않고 많은 가설을 시도해 보는 일에 강하다는 쪽에 가깝습니다.
과장해서 읽지 않으려면

- 단일 사례라는 점을 감안하고 읽으셨나요
- 정답이 존재하고 검증이 가능한 문제였다는 점을 확인하셨나요
- 사람의 선행 연구가 검증의 토대가 됐다는 점을 보셨나요
- 발표 주체가 어디인지 확인하셨나요
- 학계의 공식 검토를 거친 결과인지 구분하셨나요
자주 묻는 질문
Q. 44분이라는 시간이 그렇게 대단한가요?
시간 자체보다 접근 방식이 핵심입니다. 같은 방식을 사람이 떠올렸다면 훨씬 빨리 풀렸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여러 가설을 빠르게 시도해 볼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Q. 그럼 남아 있는 다른 미해결 암호도 곧 풀리나요?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이번 암호는 단서가 같은 책 안에 있었습니다. 원문이 소실됐거나 열쇠가 외부에 있는 암호는 상황이 다릅니다.
Q. AI가 틀린 답을 그럴듯하게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요?
그 가능성 때문에 검증이 중요합니다. 이번에는 글자 수와 운이 맞고 사료와도 부합해 근거가 마련됐습니다. 이런 교차 확인이 없다면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Q. 연구 분야에서 실제로 쓰이고 있나요?
자료 검토와 가설 탐색 단계에서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다만 최종 판단과 검증은 여전히 연구자의 몫입니다.
정리
- 1653년에 실린 64개 숫자 암호가 44분 만에 해독됐다는 보고가 나왔습니다
- AI는 암호 분석 기법이 아니라 원문 맥락에서 단서를 찾았습니다
- 숫자는 앞 섹션 단어의 위치를 가리키는 좌표였고, 첫 글자를 이으니 문장이 나왔습니다
- 글자 수와 운, 그리고 사료와의 부합이 검증 근거가 됐습니다
- 단일 사례인 만큼 일반화보다는 활용 방식의 사례로 읽는 편이 적절합니다
AI의 자기개선 논의는 스스로 진화하는 AI 5단계에서, 개발 속도를 둘러싼 쟁점은 프론티어 페이싱이란?에서 정리했습니다. 모델 성능 평가를 둘러싼 논의는 GPT-6 아스트라 수능 만점, AGI 도래인가? 글도 함께 보시면 도움이 됩니다.
참고: AI타임스 '앤트로픽 페이블 5.1, 370년 미해결 난제 암호 44분 만에 풀었다' (2026.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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